티스토리 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저는 7만원 짜리 키보드를 보고도 미친 것 아니냐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커스텀 키보드를 만들어버렸습니다.


기계식 키보드에 입문한지 한 달 째,

4대 정도를 써보고 같이 일하는 분들의 키보드도 조금 타건해보고 나니

결과적으론 고압의 리니어 스위치가 나에게 맞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놈의 스프링 소리가 문제였죠.

윤활 밖에는 답이 없다는 답변들과, 기성품을 뜯어서 윤활하느니 새로 한 대를 만드는 게 낫다는 답변들.

사실 커스텀은 처음에는 아예 논외로 쳤던 선택지였지만, 더 이상 답이 없다고 생각하니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결제를 하고 있었...

커스텀 키보드를 만들기 위해 준비물들을 사모으기 시작.............





준비물 구입


한 군데에서 모두 구할 수는 없었고, 타오바오, 옥션, 키랩 공방, 기타 납땜 관련 쇼핑몰 등등에서 배송을 하도 시켜서

하루에 택배 최대 7개까지 수령하는 신기록을 세우고... ㄷㄷ

타오바오에서 시켰던 건 하필 중국 춘지에가 끼어서 받는 데에 오래 걸렸네요... ㅡㅡ

멍청하게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해상이 아닌 항공으로 시켜서 ㅠㅠ 배송비가 해상보다 약 15,000원 가량 더 나온 것 같습니다.


다이소에서 5,000원 주고 산 구루마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끌고 집까지...


집으로 와서 공구와 재료 산 걸 바닥에 펼쳐 놓으면서 정리.

찍어놓은 사진이 이것 밖에 없는데 대충 가짓수만 2~30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ㅠ_ㅠ

엑셀로 품목 하나하나 가계부처럼 써보았는데, 지출 총합 보고 실신.................................

무튼 제가 준비했던 공구와 재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짝퉁 하코936 인두기약 12,600원, 타오바오에서 구입한 것으로, 콘센트 규격 때문에 멀티플러그도 따로 삼 ㅡㅡ (링크)

드라이버 세트 : 하우징 조립할 때 사용. 얘는 한국서 파는 같은 제품과 몇 천원 차이 안 하는데 괜히 중국서 시켜서 ㄷㄷ 무게만 더 나옴

900M 일제 인두팁 T-3C : 인두기는 짭으로 써도 인두팁은 정품을 쓰는게 좋다고 하여 별도로 구입함

납땜을 위한 :  납 흡입기(뽁뽁이), 인두 팁 클리너, 솔더윅, KESTER 유연납 0.8mm, 무세척용 플럭스

튜닝을 위한 :  크라이톡스 103/107, 62g 스프링, 스위치 스티커, LSD 오일, 슈퍼루브

키보드용 재료 : 기판, 알루미늄 보강판, 아크릴 하우징, 스테빌라이저, SMD 다이오드, 볼트와 너트

그 외 뻘템 : 핀셋, 니퍼, 아크릴 칼, 아크릴 접착제, 나사 고정제, 래핑 와이어, 장갑, 마스크, 납걸이, 알코올, 틀니세정제 등


이 미친...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타오바오를 이용했던 또 하나의 이유, WYSE 구형 체리 흑축 키보드입니다.




원래는 이 상태로 판매하고 있는데, 통관시 1인당 키보드 1대로 제한되어 있어서

판매자에게 하우징을 분리하고 선을 잘라달라고 부탁해 3대를 구매했습니다.

1대 당 가격은 한화로 약 23,000원이었습니다. (링크)

지금 생각해보면 왜 3대씩이나 시켰나 싶은데...

가격도 생각보다 쌌고, 중국서 가져오는 와이즈는 상태가 복불복이라는 얘기에 쫄아서... 결국 충동 구매... ㅠㅠ

제일 더러웠던 한 대를 제외하면 상태는 나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구흑 자체를 경험해보질 못했으니, 스위치의 서걱임이나 윤활 필요 여부같은 걸 판단할 수는 없었네요.





스위치 디솔더링


일단 키캡들을 모두 뽑아 틀니세정제와 함께 물에 넣어두고,

WYSE에서 스위치를 추출해내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전 인두기라는 것을 접해본 적이 없는 디자인 학도였으므로... 다루기가 조금 겁이 났지만 ㄷㄷ

일단 갖은 영상과 글을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뽁뽁질에 도전...!!


이렇게 납을 떼어낸 후, 기판에서 스위치를 빼내서


이렇게 전부 분리해주었습니다.


처음 하는 디솔이라, 인두를 막 갖다 대고 있었더니 스위치가 녹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엉망ㅋㅋㅋ


그리고 간혹 이렇게 다리가 접혀있는 애들이 있더군요...

니퍼로 잡고 씨름해서 겨우 겨우 빼냈네요 ㅠ_ㅠ


하부 하우징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강판 위로 드러나는 상부 하우징과 슬라이더는 아무래도 더러웠기 때문에

퐁퐁을 풀어 조금 담아두었다가, 쌀 씻듯이 씻어주었습니다.


이대로 수건 위에 펴서 이틀 정도 말렸네요.





스위치 & 스테빌라이저 윤활


커스텀을 하는 이유! 중 하나, 스위치 윤활입니다.

와이즈의 보강판이 무겁고 튼튼해서 뭔가 버리기 아까워서, 윤활 플레이트처럼 써보았습니다.


스위치 하부 하우징을 모두 꽂아주고


스위치를 붙이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키랩 곤님 공방에서 구입한 체리 스위치용 스티커!


목 아프고 지겨웠어요...ㅠㅠ 하지만 고생은 이제 시작이었다는 것을...


다음은 스프링 윤활...! LSD 오일 냄새가 심하다고 하여 걱정했는데, 참을 만 했습니다 ㅋㅋ

핀셋에 오일을 묻혀 지퍼백에 조금 떨어뜨리고 비벼준 다음

휴지로 옮겨 톡톡톡 두드려주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가장 빨리 끝난 작업 ㅎㅎ

그러나 진짜 고통은 슬라이더 윤활이었습...


역시 곤님 공방에서 구입한 크라이톡스 103/107입니다.

작은 병에 1:1 비율로 담은 후, 화장할 때 쓰던 아이라이너 붓을 희생하여 발라주었습니다.


슬라이더가 너무 쪼꼬매서 손가락으로 잡는데 힘이 들어가고,

그 결과 검지 손가락이 매우 아려옵니다ㅠㅠ


그리고 오래 걸려요...


겨우 끝... ㅠㅠ 이로써 약 90개의 스위치를 모두 완성했습니다.


이제 스테빌라이저 차례입니다.

배운 대로, 니퍼를 이용해 가짜 슬라이더의 발톱을 톡톡 깎아준 다음, 철심 양 끝에 슈퍼루브를 치덕치덕 @_@


철심 낑구는 게 힘들어서 손에 구리스가 다 묻었지만 겨우 끝ㅠㅠ

기판에 모두 체결해주었습니다.





SMD 다이오드 솔더링


드디어 땜땜을 할 차례입니다. 고지가 눈 앞에!


괴수가면님 스토어에서 구입한 SMD 다이오드.

처음 보는 건데, 정말 너무 너무 작아요. 너무 너무 작아서 놀랐습니다. 이걸 어떻게 땜하지...?ㅠㅠ


글과 영상으로 보고 배웠던 대로 땜을 시작합니다.

너무 작은 데다가 방향도 맞추어야 해서 눈이 빠질 뻔...

일단 한쪽에다 납을 먹여놓고, 그 납을 녹이면서 다이오드를 갖다대어 하나씩 붙여주었습니다.


너무 작아요...ㅠㅠ


남은 한 쪽에 납땜을 해주면서 겨우 끝... 기판이 하얘서 예뻐보이네요.





스위치 솔더링


이제 본격 스위치 땜의 차례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격이ㅠ_ㅠ

괴수가면님 스토어에서 구입한 알루미늄 보강판을 기판 위에 얹고 모서리들에 스위치를 먼저 땜해준 후,

나머지 스위치들을 모두 꽂아주었습니다.


이 상태로 모든 스위치를 땜땜


수십번의 땜질 끝에 드디어 완료 ㅠㅠㅠㅠㅠ


감격에 겨워 컴퓨터에 연결해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안 눌리는 키가 몇 개 있었는데,

대부분 다이오드 한 쪽 납땜을 안 했다거나 다이오드 방향이 틀리는 등의 문제여서 금방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우징 조립


감동의 완성... ㅠ_ㅠ 하우징 체결샷입니다. 괴수가면님의 도면으로 하나아크릴에 의뢰해 받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조금 지쳤는지 중간 과정 사진이 없네요 ㅡㅡ;;

상판부터 백색 아스텔 - 반투명 아스텔 - 투명 압출 - 투명 압출 - 투명 압출입니다.

LED는 없고, 그 덕에 LED 달 줄을 몰라 캡스락 등에도 LED가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망함


하판을 투명 압출로 뽑았더니 이렇게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덕분에 다이오드 땜 안 한 것도 찾아낼 수 있었습...ㅠㅠ





완성





B.87R PCB │ IF 알루미늄 보강판 │ 아크릴 하우징

구형 체리 흑축 │ 62g │ 슬라이더 및 스위치 윤활 │ 스티커 작업 │ 스테빌라이저 튜닝


눈물... 내가 키보드를 만들다니!!!!!!!!ㅠㅠㅠ


기존 쓰고 있는 카일 흑축이 상대적으로 무거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윤활을 잘못해서 오일이 너무 과하게 쓰인 건지...

62g임에도 그다지 무겁지 않고 오히려 가볍게 말랑거리는 느낌입니다.

두꺼운 PBT 키캡으로 다시 느낌을 보아야겠습니다.

윤활 전의 스위치와 비교해보았는데 스프링 잡소리도 없고 서걱거림도 훨씬 덜하여 엄청 뿌듯하네요 ㅠ_ㅠ


다음 도전은, 만들다 망친 텐키패드로...!


'장난감 > KEYBOARD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텐키패드 제작 실패기 2  (0) 2015.04.25
텐키패드 제작 실패기 1  (6) 2015.03.21
볼텍스 TYPE S 청축  (0) 2015.02.18
레오폴드 FC750R 흑축  (0) 2015.02.18
한성 GO187LED VIKI 카일 적축  (0) 2015.02.18